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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범수의 정공법] 권력 탐닉하게 하는 의원 특권 폐지해야

 

신뢰도 꼴찌, 대한민국 국회와 정치인


한국행정연구원이 2023년에 실시한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중앙정부, 국회, 검찰 등 7대 국가 기관 중에 신뢰도가 가장 낮은 기관은 국회다. 국회 신뢰도는 24.7%에 불과해 국민의 지탄을 받는 검찰(44.5%)보다 19.8%나 낮았다. 7대 기관 중에 20%대를 기록한 곳은 국회가 유일하다. 게다가 지난 2013년부터 2023년까지 11년 동안 단 한 번도 꼴찌를 벗어난 적이 없다.   


국회뿐 아니라 정치인도 신뢰를 받지 못한다. 누구도 정치인을 믿지 않는다. 초중고생도 불신한다.


한국교육개발원이 2023년 7월, 초·중·고교생 1만 3,863명을 대상으로 직업별 신뢰도를 조사한 결과, 교사는 86.8%를 기록하여 신뢰도가 가장 높았다. 이어서 검찰·경찰(61.7%), 판사(55.6%), 언론인(37.6%), 종교인(34.0%), 인플루언서(31.5%), 정치인(23.4%), 대통령(22.7%) 순이었다. 막강한 권력을 누리는 정치인과 대통령을 인플루언서보다 믿지 못하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다. 


다국적 사회과학 연구 기관인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s Survey)가 2022년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스웨덴 국민은 전체의 63.3%가 의회를 신뢰한다고 응답했다. 스웨덴은 국민 다수가 의회를 신뢰하는 데 왜 우리나라 국민은 4분의 3 이상이 국회와 정치인을 불신할까?


권력은 소유한 모든 자 타락시켜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일찍이 “권력은 소유한 모든 사람을 타락시킨다”고 간파했다. 권력은 만족을 모른다. 스스로 무한 확장한다. 권력욕은 천사도 중독시킬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 권력은 사람의 뇌도 바꾼다. 권력에 탐닉하면 절대 빠져 나올 수 없다. 권력은 마약이고 알콜이다. 권력은 스스로 집중, 강화, 오남용하는 악마적 속성을 갖고 있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권력자는 대개 타락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현재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주류를 형성하는 86세대 국회의원을 보라. 그들은 80년대에 민주화와 통일, 민중을 위해 군부독재에 맨주먹으로 맞선 투사이고 혁명가였다. 이제 권력을 손에 쥔 86세대 국회의원은 신뢰를 받고 있는가?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고 선포한 문재인 정부와 공정과 상식을 구현하겠다고 약속한 윤석열 정부를 보라. 평등도 정의도 공정도 상식도 찾아볼 수 없다. 두 정부에 포진한 86세대 정치인 상당수는 시대정신을 저버리고 개혁성을 상실했다. 비리와 권력 남용으로 처벌 받는 의원은 끊이지 않는다. 


기업, 정당, 국가 등 조직이 번영하려면 힘이나 돈이 아니라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신뢰는 사장과 직원, 지도부와 평당원, 집권자와 국민이 서로 지지하고 협력하며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하는 바탕이자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개인이 신뢰를 잃으면 인간 관계가 파탄 난다. 기업이 고객 신뢰를 잃으면 파산한다. 정부가 신뢰를 상실하면 갈등이 증폭하고 국민은 분열한다. 경제가 어려워도 견딜 수 있고 국방력이 약해도 버틸 수 있으나 신뢰가 무너지면 국가는 유지할 수 없다. 정치 지도자에게 신뢰가 중요한 이유다.  


터무니없는 국회의원 특권

 

 

국회의원이 신뢰를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권력에 탐닉하지 않고 비리에 물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국회의원 특권을 폐지하고 정치자금을 유리알처럼 투명하게 사용하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특권이 너무 많다. 우선, 연봉에 해당하는 세비(歲費)가 많다. 2023년 기준으로 국회의원은 월 1,300만원, 연 1억 5,700만원을 받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3년 1인 당 국민총소득은 4,405만원(3만 3,745달러)이다. 세비가 1인 당 국민총소득의 3.6배에 달한다. 


스웨덴 의원 연봉은 약 7만 8,000달러다. 원화로 환산하면 약 1억 500만원이다. 스웨덴 1인 당 국민총소득 5만 9,000달러의 1.3배에 불과하다. 한국 국회의원 연봉은 미국(2억 2,367만원), 일본(2억 1,500만원)보다 적은 세계 9위이지만 1인 당 국민총소득 대비 3.6배로 일본(2.3배), 미국(2.3배), 영국(2배)을 압도한다.


의원 사무실도 크다. 의원 집무실과 보좌진 업무 공간, 접견실을 갖춘 의원실은 148㎡이다. 스웨덴 의원 사무실은 약 15㎡로 한국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국회의원은 KTX 특실, 항공기 비즈니스석, 의원회관 내 이발소·헬스장·목욕탕·약국 등을 공짜로 이용한다. 의원 회관에 있는 내과·치과·한의원은 가족까지 무료다. 인천국제공항과 김포공항 등의 귀빈실, 귀빈 주차장도 무료다. 선진국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특권이다. 


스웨덴 의원은 출퇴근용 대중교통 카드, 개인 차량으로 의회 출근 시 유류비, 의회와 지역구 거리가 50km 이상일 때 숙소 제공 외에 어떤 혜택도 없다. 항공편으로 출장 갈 때는 이코노미석을 이용하는 게 원칙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이 사원에게 제공하는 출장비와 비슷한 수준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매년 후원금으로 1억 5,000만원까지 모금할 수 있다. 선거가 있는 해는 3억원까지 가능하지만 선거 비용은 전액 국고로 보전한다. 관리감독이 소홀하기 때문에 의원은 맘만 먹으면 후원금을 유용하거나 전용할 수 있다. 


보좌진은 9명까지 둘 수 있다. 스웨덴에는 국회의원 보좌진이 아예 없다. 일본도 국회의원 비서는 3명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보좌진을 비서와 운전 기사, 지역구 관리 직원으로 쓴다. 선거철이 되면 보좌진은 대부분 의원 지역구에 내려가 선거 운동에 동원된다. 이는 불법이다. 보좌진은 국가가 공공 사무를 수행하라고 월급을 주는 공무원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300명 세비와 보좌진 급여, 각종 보조금을 포함하면 21대 국회의원에게 지난 4년 간 약 1조 200억원을 지급했다. 이렇게 엄청난 국민 혈세를 퍼부었지만 그에 걸맞게 국가 발전과 민생을 위해 일하는 국회의원은 찾아 보기 어렵다. 


뇌물에 취약한 국회의원


22대 국회가 개원한지 두 달이 지났다. 정당마다 지지층에 입당을 권유하고 당원에게는 당비 납부를 독려한다. 국민에게는 정치후원금을 호소한다. 국회의원도 대부분 세액공제, 소득공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개인 후원금을 요청한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는 정당과 국회의원을 후원하지 않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공개한 ‘중앙당 후원금 모금 현황'에 따르면, 국민의힘 중앙당 후원회는 2023년에 총 18억 3,353만원을 모금했다. 민주당은 4억 2,244만원에 그쳤다. 국회의원 모금액은 평균 1억 2,400만원이다. 2022년(1억 8,900만원)과 2021년(1억 3,525만원)보다 줄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22대 총선 기간에 여론조사비로만 총 144억원 가량을 썼다. 후원금으로는 여론조사비의 5분의 1도 충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22년을 기준으로 민주당 안호영 의원은 정치자금으로 7억 8,500만원을 썼다. 안민석, 윤상현, 오영훈, 강훈식 의원도 4억 가까이 썼다. 안호영 의원은 문자 발송비에만 3억 6천만원을 지출했다. 후원금은 턱없이 부족하고 쓸 곳은 너무 많다. 돈 없으면 정치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뇌물의 유혹을 떨쳐버리기 어려운 이유다.


미흡한 조국혁신당의 다짐

 


조국혁신당은 지난 4월, 항공기 비즈니스 탑승과 회기 중 골프, 주식 신규 투자와 코인 보유를 금지하고 부동산 구입 시 당과 사전 협의하며, 보좌진에게 의정 활동 이외의 부당한 요구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신생 정당인만큼 기존 정당과 달랐으면 좋겠다는 국민 요구에 부응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조국혁신당의 다짐은 국민 불신 해소와 정치 문화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언론 관심과 국민 호응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당 이름과 달리 혁신적이지 않아 파급력이 약한, 언 발에 오줌 누는 정도인데다가 비슷한 움직임이 일찍이 있었기 때문이다.


1992년 6월, 이부영, 제정구, 유인태 등 재야운동권 출신이 다수인 초선의원 12명은 깨끗한 정치와 정치 문화 개혁을 위해 정치 비용 공개, 경조사에 화환 안 보내기, 고급 승용차 안 타기, 회기 중 주례 안 서기, 회의장 안 떠나기 등을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다. 당시 큰 호응을 받았지만 그 때 뿐이었다. 몇 년 후 이부영 의원은 알선수재로 구속되었고 깨끗한 정치를 실현하고 정치 문화를 개혁하겠다는 다짐은 사라졌다. 권력의 악마적 속성을 제어하지 못한 겉치레 처방이었기 때문이다. 


연봉 제한, 특권 폐지, 정치자금 투명화 필요


국회의원이 권력에 탐닉하지 않고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게 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세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국회의원 연봉을 1인 당 국민소득의 2배를 넘지 않게 하자. 연봉이 너무 많으면 불법적인 수단을 써서라도 자리를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1인 당 국민소득의 2배면 2023년을 기준으로 8,800만원이다. 이 정도면 직무 수행하는 데 충분하다. 일단 이렇게 줄이고 나서 일 잘하면 올려주자. 일만 잘 하면 1억이든 2억이든 올려 주지 못할 이유가 없다. 


둘째, 권력에 탐닉하게 하는 특권을 폐지하자. KTX 특실, 비행기 비즈니스석, 인천국제공항 등의 귀빈실과 귀빈 주차장, 의원회관 내 이발소·헬스장·목욕탕·약국의 무료와 의원 회관 내 한의원·내과·치과의 가족 무료. 이런 특권은 당장 폐지해야 한다. 국민은 무슨 죄를 지었길래 국회의원 머리 깎고, 때 미는 돈도 모자라서 가족 치료비까지 대줘야 하는가. 복장 뒤집힐 일이다.  


셋째, 활동비, 후원금, 출판기념회 수입 등 모든 정치자금은 입출금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하자. 국민에게 받은 돈이니 응당 어떻게 썼는지 밝혀야 한다. 방법은 쉽다. 의원마다 홍보를 위해 페이스북, 블로그, 유튜브 등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곳에 수입과 지출 내역을 매일 올리게 하면 된다. 지출은 카드로만 하고 영수증을 첨부하게 한다. 우리나라 회사는 모두 이렇게 한다. 직원이 회사 돈 쓸 때 카드만 쓰게 한다. 증빙을 첨부하게 하여 지출이 과다하거나 사용처가 의심스러우면 감사를 벌인다. 10원 한 장 허투루 쓰지 않게 한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기업도 이러한데 국민 혈세를 쓰는 국회의원은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한다. 


훌륭한 의원을 배출하면


거대 양당이 장악한 정치권은 국회든 지방의회든 특권을 누리고 영속하려는 야심가와 재력가가 즐비하다. 시대정신을 구현하고 국민에게 봉사하려는 정치인에게 국회 문턱은 너무 높다. 불공정한 선거구제와 불투명한 공천 때문이다.


연봉은 적당하고, 특권이 없으며, 정치자금이 투명하면 야심가·재력가는 설 땅이 좁아질 것이다. 돈은 없지만 깨끗하고 유능한 인물이 지금보다 쉽게 국회에 입성할 수 있다. 이는 다른 권력 기관의 개혁을 촉진할 수 있다. 법조인의 전관예우, 고위공직자의 로펌 직행, 검찰의 재벌 봐주기 수사, 지방의원의 외유 등 우리 사회에 만연한 특권과 부패를 해소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 


1995년 스웨덴에서 ‘토블론 초콜릿’ 사건이 터졌다. 부총리이자 총리 후보인 모나 살린(Sahlin)은 업무용 카드로 토블론 초콜릿과 생필품을 구입하는 데 640여 만원을 쓴 뒤 월급을 받아 메웠다. 이 사실이 보도되자 큰 파장이 일어났다. 결국 살린은 총리 후보와 부총리직을 사퇴했다. 우리도 이런 나라 한 번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