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권력을 독점하는 국민의힘, 민주당
지난 2022년 6월에 치른 지방선거에서, 예상대로 영남은 국민의 힘이, 호남은 민주당이 광역단체장을 비롯하여 기초단체장과 시도의원 등 지방 권력을 장악했다.
영남은 국민의힘이 광역단체장 5석 전부, 기초단체장 70석 중 62석(89%), 광역의원 226석 중 213석(94%), 기초의원 911석 중 623석(68%)을 차지했다.
호남은 민주당이 광역단체장 3석 전부, 기초단체장 41석 중 31석(76%), 광역의원 124석 중 115석(93%), 기초의원 514석 중 418석(81%)을 얻었다.
제2 야당 정의당은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광역의원 2명, 기초의원 7명 당선에 그쳤다. 진보당은 울산에서 기초단체장 1명이 당선되었지만 광역의원은 3명, 기초의원은 17명에 불과했다. 거대 양당에 밀려 소수정당은 송곳 하나 꽂을 땅도 확보하지 못했다.
선택지가 생긴 영광, 곡성 보궐 선거
16일에 치르는 재보궐 선거는 과거 같으면 관심을 끌기 어려웠다. 결과가 뻔하기 때문이다. 보수 색채가 강한 인천 강화와 부산 금정에서는 국민의힘이, 전남 영광·곡성에서는 민주당이 이기는 게 당연해 보였다. 지역 주민에게는 거대 양당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이번에는 다르다. 거대 양당이 독점한 지방 선거에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혁신당과 진보당이 참전했기 때문이다. 지난 22대 총선 호남 지역 비례대표 선거에서 민주당을 앞지른 혁신당이 영광과 곡성에서, 지역 기반이 강한 진보당이 영광에 후보를 내면서 영광, 곡성 유권자에게는 새로운 선택지가 생겼다. 거대 양당 독점 구도에 파열구가 났다.
권한이 막강한 단체장
시장, 군수, 구청장 등 단체장은 지방자치 단체의 최고 집행 기관으로 사무를 총괄한다. 단체장은 단순한 집행 기관이 아니다. 지방자치법에 의거하여, 지방의회에 속하는 사무를 제외하고 지방 사무 전반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단체장 권한은 지방의회처럼 열거주의를 취하지 않는다. 개괄주의를 택하여 행정권, 재정권, 의회에 관한 권한 등을 광범위하게 행사한다.
단체장은 국가 하급 행정 기관으로 국가 사무도 처리한다. 광역시와 도, 시·군·구 등 지방정부가 시행하는 사무는 법령에 별도 규정이 없으면 시장, 군수, 구청장 등 단체장이 수행한다.
단체장은 인사 행정권도 갖고 있다. 소속 직원에게 직무 감독권을 행사하고 법령, 조례, 규칙에 근거하여 직원 임면, 교육 훈련, 복무, 징계에 관한 사무를 관장한다.
이렇게 단체장은 사무 총괄권, 예산 집행권, 공무원 인사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어 소통령이라고 불린다. 국회의원보다 낫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중앙에 대통령이 있다면 지방에는 소통령이 있다.
단체장을 견제하는 지방의회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는 단체장을 견제, 감시하는 기관이 지방의회다. 단체장 등 지방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일이 지방의회의 가장 중요한 책무다. 단체장이 주민 혈세를 낭비하지 않는지, 지역 발전을 위해 예산을 적절하게 집행하는지, 인사권은 공정하게 행사하는지 감시한다.
지방의회는 크게 세 가지 권한을 갖고 단체장을 견제, 감시한다. 첫째, 재정권이다. 지방의회는 예산의 심의 확정권, 결산 승인권, 지방세 등의 부과 징수 조례 제정권, 지방채 발행 동의권을 갖고 있다. 예산 외의 재정 부담 행위 에 대한 동의권과 주요 재산의 취득·설치·관리 처분 조례 제정권도 있다.
둘째, 행정 감시권이다. 행정 감시권에는 행정 사무 감사와 행정 사무 조사가 있다. 행정 사무 감사는 지방자치 단체가 관장하는 사무 전반을 대상으로 한다. 행정 사무 조사는 자치단체 사무 중 특정 사안을 대상으로 한다. 행정 감시권의 시기, 기간, 횟수에는 제한이 없다.
셋째, 지방행정 사무 처리 상황 보고와 질의 응답에 의한 감시권이다. 단체장이나 관계 공무원이 지방의회에 출석하여 행정 사무 처리 상황을 보고하게 하거나, 의견을 진술하고 질문에 답하게 할 수 있다. 단체장과 관계 공무원은 지방의회가 요구할 때 출석하여 답변해야 한다. 지방의회는 업무 보고와 질문을 통해 단체장을 감시한다.
대통령과 행정부가 권력을 오남용하지 못하게 국회가 견제하고 감시하듯 지방의회가 단체장을 견제, 감시하여 권력 기관 사이에 균형을 맞춘다. 이런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매끄럽게 작동해야 지방자치가 발전하고 풀뿌리 민주주의가 꽃필 수 있다.
일당 독점의 폐해는 국민에게
1995년 단체장과 지방의원을 모두 직선제로 선출한 이후, 영남은 국민의힘 계열이, 호남은 민주당 계열이 석권하며 지방 권력을 독점했다.
30년 동안 영호남에서는 특정 정당 공천이 곧 당선이다 보니, 당선 가능성이 없는 소수정당 후보는 출마를 포기하고, 선거 때마다 주민 검증을 거치지 않는 무투표 당선자가 대거 나왔다.
거대 양당의 지방 권력 독점은 소수 목소리를 억압하고 민의를 왜곡하여 권력 사유화를 야기했다. 단체장과 지방의원이 유착하여 도덕적 해이와 부정부패를 낳았다. 단체장과 지방의원이 대부분 특정 거대 정당 소속이다 보니 시정과 도정의 중요 사안을 정당 의원총회에서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다. 단체장을 견제해야 할 지방의회는 당의 거수기로 전락했지만 이를 막을 제도나 수단은 마땅치 않았다. 현행 주민소환제는 단체장과 의회를 특정 정당이 장악하면 무용지물이다.
영호남에서는 지역 정치인이 공천권을 쥔 국회의원에게 줄 서고 편 들고 잘 보이려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거대 양당 공천만 받으면 당선되므로 열심히 일하려는 동기가 없다. 다른 당 정치인과 경쟁하지 않는다. 지방의원은 단체장을 견제, 감시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2017년 정의당 광주시당에 따르면, 광주시 전체 5개 구 의원 65명이 3년 간 구청장·국장 등을 상대로 구 의회에서 한 구정 질문은 모두 112회다. 구 의원 한 명 당 평균 두 번도 질문하지 않았다. 한 달이 아니고 무려 삼 년 동안이다. 광주시 전체 구 의원 14명(21%)은 임기 중 한 번도 구정 질문을 하지 않았다. 의정 활동이 민주당 공천을 받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현실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기초단체장이나 기초의원 선거에서는 정당 공천제를 폐지하자는 여론이 높지만 거대 양당은 듣는 시늉만 한다. 지방에 견고하게 구축한 권력을 나누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지방선거에서 같은 거대 정당에 속한 단체장·지방의원 후보가 특정 지역을 싹쓸이하면서 지방자치는 위기를 맞고 있다. 권력 기관 사이에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아 지방 권력의 비리나 예산 낭비, 권한 오남용의 감시·감독을 어렵게 한다. 지방의회가 같은 당 소속인 단체장의 무능과 불법을 견제·감시하기는커녕 눈감아 주는 사례도 잦다. 부정부패와 비리, 추문, 추태가 끊이지 않는다. 이는 지방자치의 본질적 위기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밑바탕이 흔들리고 있다.
영광, 곡성에서 민주당 절대 우세 깨져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영광은 민주당과 혁신당, 진보당이 오차 범위 내에서 치열한 3파전을 벌이고 있다. 추석 전에는 혁신당이 선두를 달렸다. 추석 직후에는 민주당이 선두를 탈환했다. 10월 7~8일 실시한 조사에서는 진보당이 35%로 1위로 올라섰다. 곡성은 민주당과 혁신당이 접전을 벌이고 있다. 영광과 곡성 모두 민주당 절대 우세 지형에 파열구가 났다.
낙선 가능성에 당황한 민주당은 곡성·영광 보궐선거를 중앙당이 총지휘하면서, 텃밭 사수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중진 정청래 의원은 주말마다 지역 곳곳을 누비고 있다. 혁신당은 조국 대표가 곡성·영광에서 월세살이를 하고 신장식 의원은 곡성에 상주하며 표밭을 일구고 있다. 진보당은 조직을 총 가동하고 있다. 당원 수백 명이 청소와 농사일 돕기 등 지역 일꾼을 자처하며 민심을 파고 들고 있다.
소수정당의 약진으로 예전과 달리 영광, 곡성 보궐선거는 국민적 관심사가 되었다. 민주당 일당 독점을 깨기 위해 혁신당과 진보당이 가세하면서 민심을 얻기 위한 경쟁에 불이 붙었다. 이념과 지향, 결이 다른 후보를 비교해 가며 영광, 곡성 유권자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소수정당 당선으로 지방자치 살려야
이번 보궐선거는 지방 정치의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도덕성과 비전, 섬세한 정책 기획력과 풍부한 상상력을 갖춘 후보가 당선되어 지방 권력을 민주화해야 한다. 고질적인 권력 기관 간 유착과 부정부패, 비리를 청산해야 한다.
단체장과 지방의회가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바탕하여 지역 발전과 정치 개혁에 힘을 쏟도록 만들어야 한다. 단체장과 지방의원이 지역 유권자를 주인으로 섬기는 진정한 지방 자치를 구현해야 한다.
그런 길로 가려면 거대 양당에 경종을 울리고 각성하게 만드는 소수정당 후보가 당선되어야 한다. 호남 민심은 지역 정치 혁신과 새로운 선택을 열망한다. 영광이나 곡성에서 소수정당 후보가 당선된다면 30년 동안 고이면서 썩어 가는 정치 생태계에 신선한 공기와 물을 공급하여 풀뿌리 민주주의를 살릴 수 있다.
영광, 곡성 유권자여! 소수정당에 표를 던져라! 풀뿌리 민주주의 소생을 위해!